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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념]《길림신문》의 독립과 성도에로의 이전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5.04.01일 15:53
《길림신문》 창간 30주년 기념기고

■박문희

개혁개방의 봄바람을 타고 1985년 4월 1일에 고고성을 울린 《길림신문》의 탄생은 길림성 산재지구 조선족들에게는 일대 사변이었다. 주요 독자대상은 산재지구 40여만 조선족이였지만 조선족 90만이 살고있는 조선족의 수부 연변의 비옥한 문화토양을 공유하는 종합민족지이자 중공길림성위에서 꾸리는 성급 당보로서의 《길림신문》은 드높은 사명감을 안은 임직원들에 의하여 효률성 높게 운영됐다. 신문을 통해 연변의 문화를 접하는 산재지구 우리 겨레가 받는 충격도 눈물겨웠지만 연변외의 넓은 지역에 살고있는 겨레의 소식을 받아안는 연변사람들의 신선감과 감동도 매우 벅찼다.

물론 이 신문은 전 성 120여만 조선족군중, 특히 산재지구 40여만 조선족군중의 강렬한 요구와 당시 성인대 부주임 최채, 성위부서기 겸 성군구정위 조남기, 성정부 고문 최림 등의 강력한 유세밑에 대중의 요구를 수렴한 중공길림성위의 결정에 의해 꾸려진것이였다. 당시 길림성위에서는 연변주당위에 《길림신문》창간을 위탁했고 연변주위에서는 또 연변일보사에 창간과업을 맡겼다. 하여 길림신문사는 본부를 연변일보사에 두고 장춘, 길림, 통화지구에는 주재기자를 주재시키게 되였다.

당시 중공길림성위 고적서기는 길림신문은 성위에서 전액의 돈을 대서 꾸리는 당당한 성급당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그런만큼 《길림신문》에 대한 관리를 지구급신문인 연변일보사에서 감당하는것은 일시적일뿐이였다. 필연적인 결과로 1987년 3월 5일 길림신문사는 《연변일보》로부터 독립하여 완전히 자립적인 신문기구로 되였다. 독립전에는 연변일보사 오태호총편집이 길림신문사 사장 겸 총편집을 겸임했으나 독립후 길림신문의 초대 사장 겸 총편집은 리송영이 맡았고 그 뒤를 리금남이 이었다. 한편 《길림신문》은 연변일보사로부터는 독립했지만 간부인사관리는 여전히 연변주당위에서 책임지는 상황이 2001년 2월전까지 10여년간 지속됐다.

1993년부터 길림신문은 연변에서 신문판면을 편집해 장춘에 보내면 장춘지국에서 매호 신문을 마무리짓고 길림일보사 인쇄공장에 의뢰하여 옵세트인쇄를 하는 2년간의 《과도기》를 겪었다. 이는 길림성도(省都)인 장춘에서 신문제작을 해야만 전 성 뉴스를 신속히 포착하여 명실공히 성보로서의 소임을 다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본사를 연변에 둔 상황에서 그것은 최선의 선택이였고 그것은 또한 본사의 장춘이전을 위한 준비로도 되였다. 드디여 1995년 4월 창사 10주년을 맞으며 길림신문사는 마침내 본사를 장춘에 옮기고 연길에는 연변지사를 설치하게 된다.

이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사옥을 짓는 일이였다. 돌이켜보면 《길림신문》은 이사도 여러번 했다. 1987년 3월 《연변일보》로부터 독립한 뒤 주둔부대 초대소에 세맡고 들어 난로불을 때면서 신문을 꾸렸으며 그해 8월에는 조건이 조금 나은 덕의루에 옮겨가 신문을 꾸리다가 1989년 1월 새로 락성된 연변보도청사 9층과 10층에 들었다. 12층으로 된 연변보도청사는 연변일보사, 길림신문사와 중국조선족소년보사 《3사》가 공동히 투자해서 지었는데 《길림신문》몫으로 성재정에서 지급한 기건비는 총 65만원이였다. 본사는 장춘에 이전한 뒤 장춘시로동간부학교 세집살이를 4년 넘게 했다.

본부가 장춘으로 이전해서 3년만인 1998년 성정부의 500만 투자로 마침내 2000평방메터의 사옥을 건설하기 시작, 1999년 7월 28일 사옥에 입주함으로써 사무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게 된다.

[저자는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길림신문사 부총편집으로 근무]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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