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가 깊어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조선업계는 수주물량 감소, 선박 인도 연기 같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자동차나 전자업계도 수출전선에서 암초를 만나기는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유럽지역 경영환경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유통채널을 점검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경제 전체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의 대응은 한계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조선업종은 유럽 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선주사 대부분이 유럽에 있어 당장 수주가 어려운 데다, 세계 경제가 둔화하면서 물동량도 크게 줄었다. 현대중공업의 올 1분기 수주 금액은 11억3000만달러로 조선해양부문 연간 수주목표 143억달러의 9%에 그쳤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수주물량도 줄고, 선박금융도 어려워져 사실상 상선 건조시장은 올해 최악의 해를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현재 건조 중인 선박에 대해서도 선주사에서 건조를 연기해 달라거나, 대금 지급을 늦춰달라는 요청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국내 조선사의 매출액에 큰 변동이 없지만 내년 이후부터는 유럽 위기가 매출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조선업체 관계자는 “수주를 하면 건조기간 2~3년 동안 5~6차례에 걸쳐 대금을 나눠 받기 때문에 지난해부터 이어진 불황이 내년이나 내후년 매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자동차업계도 유럽 위기 영향으로 고전하고 있다. 수출물량의 30%가량을 유럽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GM은 지난 5월 수출물량이 1만3435대로 지난해 같은 달 3만1005대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한국GM 관계자는 “유럽 자동차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올 하반기에는 고연비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4월까지 유럽의 전체 자동차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 감소했다. 폭스바겐(-0.9%), 푸조·시트로앵(-13.5%), 르노(-21.0%) 등 유럽 업체들은 물론 제너럴모터스(-11.8%), 포드(-6.9%), 도요타(-7.8%) 등 대부분의 해외 업체들도 판매량이 줄었다. 현대자동차(9.7%)와 기아자동차(23.1%)는 그나마 판매가 마이너스로 돌아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대차의 4월 판매 증가율이 1.3%로 제자리 걸음을 하는 등 유럽 자동차 시장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내놓은 유럽형 신차들이 선전하면서 다른 업체들에 비해서는 상황이 낫지만 앞으로가 문제”라고 말했다. 유럽 위기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세계 자동차 시장이 동반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유럽 TV 시장도 올해 들어 반토막이 났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 집계를 보면 TV 판매량은 지난해 4분기 1848만1100대에서 올 1분기엔 1196만2000대로 급감했다. 지난해 1분기에 비해서도 11% 감소했다. 1분기 휴대폰 판매량도 지난해 4분기보다 21.2% 감소했다.
전체 매출의 15~25%를 유럽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삼성·LG전자 등 국내 전자제품업체엔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는 현지법인들을 중심으로 유통채널 관리 등 판매망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금융시장 변동에 대비해 현금 보유량을 늘리고 대형 투자도 최소화할 방침이다. LG전자는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유럽 시장을 대체할 만한 신성장 시장 비중을 늘려갈 방침이다. 여전히 전자제품 판매량 증가율이 10%에 육박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을 집중 공략해 유럽발 시장 손실을 상쇄시킨다는 전략이다.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