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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홍군25]월감군구 사령원 양림 발자취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09.12일 15:22
특별기고-겨레홍군 장정 발자취 따라(25)

■ 리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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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7월부터 그후 1년 사이 양림은 강서 중앙혁명근거지에서 선후로 중화쏘베트공화국중앙정부 로동과전쟁위원회 참모장, 중국로농홍군 제1방면군 보충사 사장, 강서군구 회창-심오-안원 군분구 사령원, 홍군 23군 군장, 월감군구 사령원, 홍1방면군 1군단 참모장 등 어마어마한 군직을 력임한 왕성한 모습을 보인다. 그 시절 홍23군이나 월감군구는 오늘의 강서성 동남부에 위치한 회창현 문무파(文武坝)에 자리잡았으니 양림 발자취 현지답사는 강서 감주시 산하 현급시 회창으로 이어진다.

2013년 8월 하순 여름방학을 타서 혁명성지 정강산과 서금 현지답사길에 나서보았다. 정강산 답사는 처음이라지만 서금은 두번째여서 서금의 엽평, 사주패 모든것이 인상적이였다. 회창현성은 서금에서 남으로 45키로메터쯤 되는 곳이고 문무파는 현성에서 북으로 몇키로메터 떨어진 서금-회창 고속도로옆 숲속언덕이란다. 9월 1일 오전 9시를 앞두고 고속도로에서 동으로 숲속언덕을 따라 올라가지만 흐리터분한 날씨에다가 사람 하나 볼수 없으니 한적한 기분이 갈마든다. 아무러면 보다 고즈넉하고 우중충한 산속도 자유로이 헤치고다니는 나로서는 대수가 아니다.

숲속길은 언덕중턱에서 두갈래로 갈라진다. 원길을 따라 나아가니 숲으로 꽉 덮인 적막강산만이 이어질뿐이다. 아닌가싶어 도로 내려왔다가 갈림길에서 굽이진 길을 따라 비스듬히 나아가니 저 앞 숲속길 왼켠에 노오란 입구를 만든 길다란 단층집 한채가 보인다. 단층집은 주변이 대나무숲으로 우거졌다. 가까이 다가서니 입구엔 “모택동과 월감성 기념관” 편액이 걸리였다. 지난 세기 30년대 초반 그 시절, 중화쏘베트공화국 주석 모택동도 한때 회창 문무파에 머물었으니 여기가 찾고저 하는 회창 문무파가 옳은가부다.

강서 회창현 문무파 혁명사적지 “모택동과 월감성 기념관”에 첫 사진으로 전시된 양림. 강소 여고의 홍14군기념관에서는 이 사진이 장세걸로 오른다. /2013년 9월 1일 현지촬영

“모택동과 월감성 기념관” 문이 잠기였다. 별수없이 숲속길 따라 내려가니 문무파 혁명사적지가 나타난다.

(제대로 찾았구나!)

숨이 화알 나온다. 모택동 옛집 간판도 보이고 월감성군구(粤赣省军区) 옛집과 소공월감성위(少共粤赣省委) 옛집 간판도 보인다. 월감성군구라면 양림이 사령원으로 활동한 그 군구가 아닌가, 너무도 기뻐 막 달려들어가고싶었지만 문들은 모두 잠겨있고 월감성군구 옛집과 주변은 꽤나 높은 흙담장으로 둘러있어 가까이 다가설수도 없다. 때는 오전 9시쯤이지만 물어볼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는다.

(이러다 옛집내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돌아서게 되면 어쩌나?!)

조바심이 들어 안절부절 못하는데 소공월감성위 옛집 뒤켠의 한 집채에서 안로인 한분이 씻은 빨래를 들고 나선다. 가까이로 다가가 여기 혁명사적지분들은 오지 않는가고 물으니 뭐라고 하는데 한마디도 알아들을수가 없다. 할수없이 물러섰다가 오락가락하는데 오토바이를 탄 30대 남자 하나가 나타난다. 안로인과의 물음 그대로니 남자쪽에서는 이곳 사적지 사람들은 매일 현성에서 출근하니 이제 곧 보일거라고 한다. 후-시름이 놓인다. 출근한다면야 얼마든지 기다릴수 있지, 조바심이 풀린 나는 문무파 혁명사적지 외모를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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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거슬러보면 중앙혁명근거지에서 양림이 처음 맡은 군직은 중화쏘베트공화국 로전(老战)위원회 참모장과 홍군 제1방면군 보충사 사장이다. 로전위원회가 중앙혁명군사위원회 총병참부로 개칭되니 양림은 그대로 총병참부 참모장으로 나선다. 그때 중앙혁명군사위원회는 산하에 총참모부-총동원무장부-총공급부-총병참부-총위생부 등 부서를 두었으니 총병참부 참모장이면 상당한 홍군 고급장령으로 된다.

그 시절 중앙쏘베트구역의 홍군주력부대는 중앙쏘베트구역에 대한 국민당군대의 제4차 “포위토벌”을 분쇄하고저 근거지의 남부를 떠나 북상길에 올랐다. 이 사이 광동의 흥녕(兴宁), 매현(梅县) 지구와 복건의 상항(上杭), 무평(武平) 등지에 둥지를 튼 국민당 월군(粤军)은 민(閔,복건), 월(粤, 광동), 감(赣, 강서) 변계의 지주무장들과 야합하여 중앙쏘베트구역 즉 중앙혁명근거지 남부지구를 끊임없이 진공하며 안전을 위협해온다.

이런 현실에서 중앙혁명군사위원회(中革军委)와 신생한 강서군구는 강서군구 산하에 제3작전분구를 설립하고 제3군분구가 강서의 회창, 안원, 심오와 복건의 무평 4개 현 군사부와 하나의 유격대대를 통솔하며 중앙근거지의 남부 변계지구를 지켜서도록 하였다. 강서성의 회창, 심오, 안원은 강서성 남부지구를 이루는 오늘의 감주(赣州)지구의 소속현들로서 말그대로 그제날 중앙혁명근거지의 남대문을 이루고있었다.

문무파 혁명사적지내 월감성군구 옛집 /2013년 9월 1일 현지촬영

그때 총병참부 참모장 양림은 중앙혁명군사위원회의 명령으로 강서군구 회창, 심오, 안원군분구 사령원으로 부임하였다. 회심안군분구는 선후로 무평의 동류(东留), 계갱(桂坑), 심오의 라당(罗塘), 회창의 장령(长岭), 균문령부용채(筠门岭芙蓉寨) 등지를 활동무대로 하였다.

제4차 “포위토벌”을 물리친후 중앙혁명근거지는 보다 늘어났다. 중화쏘베트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제48차 회의는 1933년 8월 16일, 강서 회창에 월감성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월감은 광동과 강서를 포함한다는 뜻으로서 월감성은 우도(于都), 회창, 서강(西江), 문령(门岭), 심오, 안원, 신강(信康) 등 7개 현과 흥룡(兴龙)현위, 무서(武西)공작위원회, 신강감(信康赣)현위, 원식(远殖)유격구 등 월감변계의 광대한 지구를 포괄하고있었다.

월감성 설립에 앞서 1933년 3월 25일, 강서군구 제3군분구와 제5군분구는 제23군으로 개편됨을 보인다. 중국로농홍군 제23군은 간칭 홍23군으로서 중국로농홍군의 지방부대의 하나로 나타난다. 강서군구 회창, 심오, 안원 군분구 사령원 양림이 신생한 제23군 군장으로 부임한다. 어떤 자료들에서는 류웅무(刘雄武)가 군장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양림이 제1임군장이고 류웅무는 양림의 후임 군장대리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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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감성 관련자료를 검토하면서 한참 기다려도 문무파 혁명사적지 강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사이 사진도 찍는 한편 문무파 관련, 양림 관련 자료들도 계속 검토하여보았다.

홍23군이 설립되여 3개월만에 홍23군은 군을 사로 축소하는 중앙혁명군사위원회의 통일명령에 좇아 월감군구 제22사로 축소된다. 월감군구는 이해 1933년 4월, 중앙혁명군사위원회의 명령으로 원 강서군구 제3군분구와 제5군분구가 합병된 새로운 군구로서 양림이 사령원을 맡았던 원 제3군분구 소재지 회창현 균문령부용채에서 설립되였다. 균문령은 오늘의 회창현 균문령진으로서 북남으로 위치한 회창현과 심오현의 중간지대에 자리잡고있다. 월감군구 사령원은 홍23군 군장 양림이 이어받으며 군구 산하에 3개 군분구(즉 3개 작전분구)와 하나의 기간병퇀인 홍군독립22사를 두었다. 홍22사는 홍 23군이 사로 축소되면서 형성된 부대이고 월감군구 산하 3개 군분구와 홍 22사는 모두 월감군구 사령원 양림의 지도를 받았다.

월감군구사령부 조직서렬표에 양림이 필사제로 나타난다 /2013년 9월 1일 현지촬영

홍23군과 그후의 홍22사, 월감군구의 소재지와 주요 활동무대는 강서땅인 월감성 회창현이였다. 회창현은 오늘의 강서성 동남부에 위치한 현으로서 동으로는 복건, 남으로는 광동과 린접하여 예로부터 감(강서), 월(광동), 민(복건) 3성의 중요한 길목—요충지로 불리웠다. 자고로 “동남의 복건, 광동을 인후로 옛날 9주를 호령하다”는 바로 이런 연유여서 회창은 중앙혁명근거지의 중요구성부분이고 중앙혁명근거지 남대문으로 통하였다.

이같은 회창현 균문령에 오늘 균문령부용채 월감군구 옛터와 강서군구 제3군분구 옛집, 균문령부용채 월감군구병원옛집, 회창산(会昌山)8.1봉기부대와 회창전투유적지, 등소평이 서기로 부임한 균문령 중공회심안중심현위 옛집 등 홍색유적지들이 자리잡고있으니 회창현의 역할, 균문령의 역할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신생한 월감군구는 중앙혁명근거지 남방전선의 최고군사지휘기관으로서 1933년 8월, 월감성이 설립된후 중공월감성위가 활동하는 문무파로 소재지를 옮기였다. 문무파에는 문무파 모택동의 옛집, 문무파 중공월감성위 옛집, 문무파 월감성군구 옛터가 있어 회창 문무파의 역할을 잘 헤아릴수가 있다. 그래서 월감성군구 옛터 찾아, 군구사령원 양림의 발자취 찾아 서금에서 남으로 40여키로메터 떨어진 회창현 문무파를 찾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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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얼마후 문무파 혁명사적지 강사가 나타났다.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녀성강사인데 자기들은 회창현문물관리소 직원들이나 이곳은 평소 한적한 고장인데다가 현성에서 출근하노라니 기다리게 하였다고 사과부터 한다. 직업교육이 잘된 강사였다. 녀성강사의 안내로 입구 길쪽에서 처음 본 “모택동과 월감성 기념관”부터 찾아보았다. “모택동과 월감성 기념관”은 자그마한 기념관이라지만 참새는 작아도 오장륙부는 다 있다고 회창에서의 모택동, 월감군구의 설립과 활동, 월감성 등 부분으로 구성되여 사진과 글이 유기적으로 잘 배합되여있었다.

신나는 일은 기념관내 제2부분을 이루는 “월감군구의 설립과 활동”중 월감군구 력대 7명 주요인원 사진속에 양림이 첫 사진으로 모셔진것, 하긴 이 사진을 강소성 여고시의 홍14군기념관에서는 홍22군 참모장 장세걸로 모시고있지만 양림이 월감군구의 첫 사령원이라고 문무파 혁명사적지에서는 가장 으뜸가는 사령원으로 받들고있었다. 녀성강사와 양림을 기념관 첫 사진으로 모셨다고 하니 월감군구에서의 양림의 성망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녀성강사의 안내로 이어 문무파 혁명사적지내 모택동의 옛집과 월감군구 옛집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월감군구 옛집내에는 월감군구사령부 서렬표, 월감군구 옛터 소개, 월감성지도 등 안내문과 지도가 걸리였는데 월감군구사령부 서렬표 사령원의 위치에 양림의 이름이 두번째로 밝혀져있었다. 이로부터 보면 녀성강사의 이야기처럼 월감군구에서의 양림의 성망은 뜨르르하였고 양림의 주요활동지로 필자앞에 나타났다.

문무파 혁명사적지내 모택동이 거처하던 옛집 /2013년 9월 1일 현지촬영

참말이지 강서 회창현 문두파를 잘못 찾지 않았다. 여러 소개와 중문 글들에서 개략적으로 알려지는 월감군구 사령원으로서의 양림은 그의 활동지 회창에서는 생생히 살아움직이고 있었다. 2012년 12월 민족출판사에 의해 출판된 《홍군장령 양림》 평전에 회창 문무파 현지탐방을 넣지 못하여 유감이라지만 《길림신문》 장정기행련재를 통하여 우리 겨레사회에 널리 알릴수 있으니 다행이기도 하다.

다시 흘러간 홍군시기 회창력사로 돌아오면 1933년 7월과 9월 사이, 장개석이 50만의 병력을 투입하여 중앙혁명근거지에 대한 제5차 “포위토벌”을 시작할 때 근거지안의 남방전선에는 홍군주력부대라야 홍22 밖에 없었다. 양림은 후임 월감군구 사령원들인 장운일(张云逸), 좌권(左权), 하장공(何长工) 등과 더불어 월감군구가 월감성지방사업들에 참녜하는외 주요한 과업을 지방무장을 장대시켜 유격전쟁을 벌리며 홍22사를 지휘하여 국민당 월군(粤军)의 진공을 격퇴하면서 중앙혁명근거지의 남대문을 보위하는데 두었다. 월감군구는 또 선후로 월감정진유격대, 감남정진유격대, 심남정진유격대와 무서유격지대를 조직지도하여 근거지보위에서 빛나는 업적을 쌓았으니 그 업적들에는 양림의 역할도 크게 깃들어있다.

1933년 5월, 양림은 또 홍군 제1방면군 1군단 참모장으로 승진하여 중앙혁명근거지와 홍군부대에서의 양림의 지위와 역할이 보다 커졌다. 홍군 제1방면군 제1군단 참모장은 군급이상 군직으로서 양림 생애의 최고군직으로 홍군력사의 빛나는 한페지로 남아있다. 더구나 월감군구 소속 홍22사와 같이 1933년 5월, 중국로농홍군 총부(홍1방면군 총부이기도 하다)가 설립되면서 홍1방면군의 모든 소속부대를 정돈하며 군편제를 일률로 사편제로 축소할 때 양림은 사장도 아닌 군급을 뛰여넘는 군단 참모장으로 승격하니 조선인 양림을 다시다시 보게 된다.

인젠 자그만한 언덕의 수림속에 자리한 회창현 문무파 혁명사적지를 떠날 시간도 되였다. 이곳 혁명사적지 내내 안내와 소개를 맡아준 녀성강사는 조선사람 양림은 진짜배기 월감군구 사령원이라면서 세상에 보다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내심을 표시한다. 그러는 녀성강사가 그지없이 고맙기만 하다.

월감성군구 옛집에 보이는 소개간판 /2013년 9월 1일 현지촬영

2016년 8월 13일 정리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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