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만 한국이죠. 차별받는 건 외국인과 다를 게 없습니다."
지난달 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술집. 10년전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술집을 운영 중인 파키스탄 출신 A씨(43)는 진상 손님에 곤욕을 치렀다.
손님은 다짜고짜 반말로 "내가 살테니 비싼 거 가져오라"며 허세를 부렸다. A씨가 막상 양주를 내오자 "사기꾼 아니냐. 외국인 XX가 돈 버니까 정신이 나갔냐"며 난동을 부렸다. 급기야 손님은 주먹을 휘둘렀고 경찰이 출동했는데도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A씨는 "귀화해도 노예 취급을 당한다"며 한숨지었다.
상당수 국내 귀화인들이 외모에 따른 부당한 차별대우로 고통 받고 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이들을 여전히 외국인으로 대하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는 탓이다. 귀화인들은 한국인의 나이를 가리지 않는 반말과 욕설, 편견, 차별 때문에 견디기 힘든 경험을 한 적이 적잖다고 토로했다.
A씨는 "한국 사람들은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한테는 반말을 한다"며 "한 택시기사는 가락동으로 가자고 했더니 '아니 외국인이 거긴 왜 가'라며 대뜸 목소리를 높이더라"고 했다.
아시아계 귀화인에 대한 편견은 더욱 심한 편이다. 2012년 캐나다인과 영국인 2명과 함께 가게를 열었다는 A씨는 "유독 나한테만 '너네 나라에 수박있어? 택시 있어?' 식의 질문을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부인과 함께 걷던 A씨는 "저 아가씨 봐라, 외국인이랑 결혼하고 XX한다"며 모욕적인 발언을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자녀 3명을 둔 A씨는 "자녀들까지 커서 차별받을까 걱정이 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국에서 귀화해 아들 2명을 키웠다는 이모씨(67)도 "남구로에서 가족끼리 저녁 먹고 나오는데 '조선족 위험하다, 꺼지라'며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일상생활 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귀화인에 대한 차별은 남아있었다. 2005년 5월 일본에서 건너와 귀화했다는 신모씨(27)는 기업 면접에서 수차례 차별적 발언을 들어야만 했다.
신씨는 한 물류회사 면접에서 "아버지가 일본인일 줄은 몰랐다"는 말과 함께 낙방했다고 했다. 이어 "당시 면접관이 '국적이 한국인 것과 한국인과는 다르다'고 하는데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다른 중견 물류회사 면접에서는 "서류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그런 건 외국인한테 물어봐야한다,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하자 '한국이 싫어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일을 하고도 제대로 된 일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씨는 "2013년 부천 건설현장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150만원 상당의 일을 했는데 70만원만 받기도 했다"며 "70만원도 계속 전화해서 겨우 받아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엔 원청업체로부터 돈을 못 받았다고 하더니 나중에 '조선족들 다 싸잡아서 신고하겠다'는 식으로 협박했다"며 "덜 힘들게 살려고 귀화했는데 한국에서 나는 영원한 조선족일 뿐"이라고 말했다.
귀화인들은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이방인이라는 낙인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을 떠나는 귀화인들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결혼한 신씨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호주에서 살기로 마음먹었다"며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왔지만 결혼할 부인과 2세에겐 더 이상 험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숙였다.
재한외국인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