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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리광인이 펴낸 《광복전 겨레작가론》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5.12.01일 12:24

《광복전 겨레작가론》 출판기념회에서 서평을 하고있는 절강월수외국어대학 류은종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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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광인의 새 학술저서- 《광복전 겨레작가론》은 지난세기 20년대로부터 4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광복전 연변땅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문학의 주류를 이룬 최서해, 김창걸, 윤동주, 강경애 등과 이 시기에 창작된 두 극본에 한정하였고 지금까지 이들 작가에 대한 연구가 따라가지 못하였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과 또 그러한 작품과 관련부분만을 언급하였다. 저자는 광복전 부분 작가들의 연구에《진전이 거의 없는줄로 안다》, 《빈구석이 많다》고 지적하고나서 지난 2004년부 터 2014년까지 어언 10년간 최서해 등 작가들에 대한 작가연구와 문학연구에 초점을 모은 책이라고 하였다.

저자는 력사의 뒤안길에서 우리 겨레작가들이 남긴 발자취를 추적하여 작가연구에서 빈구석으로 남아있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주안점을 두어 연구성과를 올렸다. 우선 해방전 겨레작가 연구자료와 관련 작품을 일일이 빠짐없이 탐독하고 자료수집을 참답게 한 기초에서 비교분석을 가하였다.

《광복전 겨레작가론》을 보면 주석을 달아 참조한 곳이 무려 258곳이나 된다. 최서해론에 39곳, 김창걸론에 35곳, 강경애론에 37곳, 윤동주론에 70곳, 송명규 윤광주 론에 56곳, 극본론에 21곳의 주석을 달아 독자들에게 출처를 알리였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석을 이렇게 많이 달아가며 속속들이 서술했다는것은 많은 책들을 탐독하고 자료적 근거를 충실히 제공하였다는 또 하나의 증거물로 된다.

저자는 다른것은 그만두고 최서해 작가의 위상에 대한 옳바른 평가를 위하여 참조한 문헌자료만 하더라도 조선의 조선어문, 조선문학, 문학신문, 청년문학, 문학연구 등 잡지에 실린 최서해 관련자료를 1954년부터 장장 20년에 이르기까지 다 뒤져보았고 현대조선문학선집, 한국현대문학사, 소설사, 문학통사, 한국수필문학 대전, 한국현대문학사개관 그리고 최서해선집의 여러 판본들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비교분석하고 조선의 권위적인 작가 리기영, 한설야 등과 시인 박세영, 박팔양 등, 문학연구에서 권위적인물 안함광, 엄홍섭, 송영, 한증모를 비롯하여 한효, 리정규, 김민혁, 강능구 등과 중국의 정판룡, 권철, 채미화, 김해룡, 장춘식, 방룡남, 강룡권, 김유설, 황장석 등, 한국에서의 김운식교수 등이 쓴 문학사거나 평론, 론문, 저서들을 읽고 견해의 정확성과 문제점을 찾아내여 연구에서 미비한 점을 지적하고 빈자리라고 생각하는 점을 새로운 자료적 근거로 보충 수정하였다.

광복전 겨레문학연구에서의 저자의 가장 큰 성과라면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거기에 대한 타당한 평가라고 본다. 이 책에서는 1920년대 중반과 후반에 조선문단에서 활약한 최서해 (1901-1931)의 소년시절 아버지 문제, 북간도와 특히 서간도 시절 체류문제에서 평론가들이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문제를 새롭게 다루었다. 최서해의 북간도, 서간도에서의 6-7년동안의 방랑생활을 두고 저자는 최서해의 작품분석과 발자취 추적, 찾아볼수 있는 중국조선족문단과 한국의 관련자료들을 전방위적으로 헤아리면서 《탈출기》의 창작마을이라는 달라자 성동촌 비전동은 사실 최서해가 귀국시절 한때 거쳐간 곳일뿐이고 서간도에서의 생활이 중요하다고 지적하여 시사하는바가 크다. 최서해의 아버지가 한방의, 한말 지방소관리, 후에 만주독립단으로 가버렸다는 등 래력에 대해서도 한국과 조선의 관련자료, 중국 연변의 관련자료를 폭넓게 제시하면서 최서해가 돌도 되기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조선의 관련자료에 의미를 부여하고있다. 최서해의 아버지문제는 작가 최서해연구에서 부딪치는 저자연구의 첫번째 문제이고 여러가지 설을 망라한 시시비비가 많은 부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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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걸(1911-1995)에 대해서는 작가와 교육가에 앞서 우선 혁명가였다는 문제, 처녀작 문제,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문학습작활동 등을 새롭게 다루었다. 혁명가로서의 김창걸선생의 행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정판룡, 권철, 림연, 현룡순, 리정문, 김호웅, 박충록 등 7명의 조선족교수가 바라보는 시각을 분류하고 다시 종합분석을 가하여 객관적 타당성을 기하였다. 김창걸은 종교교육반대, 동맹휴학과 적색혁명자후원회, 엠엘계통 고려공산청년회, 조선공산당과 관련 혁명활동에 참가한것으로 혁명가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김창걸작가는 조선공산당 시절 공청원이고 조선공산당 당원이여서 혁명가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김창걸선생의 처녀작은 《무빈골전설》이라 함은 우리 문단의 기정사실이였다. 그러나 리광인교수의 연구시각은 전혀 다르다. 저자는 1981년 7월, 연변대학 조문학부 재학시절에 벌써 선후 일곱차례나 김창걸교수를 취재하면서 김창걸교수의 직접 증언을 통해 《무빈골전설》은 1936년이 아닌 1982년 작품이고, 1939년 1월 《신춘문예》지에 발표한 《건설보》가 처녀작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창걸선생이 직접 쓴 《중국소수민족현대작가략전》의 략전, 1981년 4호 《연변문예》에 발표된 강장희의 《로작가 탐방기》, 현룡순선생의 관련 평론 등도 리광인교수의 주요 의거로 되고있다.

리광인교수의 윤동주연구와 작품연구는 남다른 모습을 보이고있다. 《광복전 겨레작가론》에 따르면 제4부 윤동주론은 서로 이어진 도합 7편의 학술론문으로 구성되여있다. 송몽규, 윤광주 관련 학술론문까지면 윤동주와 관련 학술론문은 11편에 이른다. 지금까지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시인 윤동주와 그의 작품을 두고 한 평론가가 이같이 종적, 횡적으로 깊이있게 다룬 전례를 찾아볼수가 없다. 윤동주 연구에서도 윤동주 조상들의 북간도 자동 설법 규정, 명동촌은 1899년 김약연 등 4대가족이 이주와서 생겨난 마을이 아니라 그전에 벌써 룡암동으로 불리였다는것, 윤동주가 명동소학교를 마치고 1년간 다닌 달라자학교가 단순한 중국인학교가 아니라 화룡현 현립1교라는것 등등도 윤동주론에서 처음 학술적으로 펼쳐진다.

윤동주론과 송몽규 윤광주 론은 또 윤동주의 사상적 지향과 그 흐름, 사상편력연구를 두고 우리 문단에서는 처음으로 학술적으로 연구하면서 윤동주는 시인이면서 항일독립운동가라고 지적하여 크나큰 주목을 끈다. 윤동주의 사상적지향과 항일독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윤동주의 고종사촌인 송몽규로 알려진다. 1935년 송몽규는 룡정 은진중학교 력사교원 명의조선생의 영향과 파견으로 남경행에 올라 중앙륙군군관학교 락양분교 제2기생으로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있다.

2013년 7월 여름방학 위해에서 《중소학교시절 송몽규와 윤동주 사상편력연구》를 집필하고있던 저자는 여러 자료로 보는 송몽규의 남경행이 아리숭하자 집필을 접고 곧추 송몽규가 제2기생으로 활동한 남경 동관두와 강소 의흥현 룡지산 징광선사로 달려가 현지답사길에 오르면서 력사의 진면모를 제대로 파헤쳤다. 위해로 돌아가서 저자는 계속하여 관련 집필을 다그치면서 무게 있는 《1935년 송몽규 남경행의 진실한 내막》을 써낼수 있었다. 송몽규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윤동주는 항일독립운동가로 나란히 성장하며 삶의 최후를 독립운동가의 참모습으로 마감짓게 되였다는것이 윤동주론의 한 주제로 되고있다.

《광복전 겨레작가론》에서 저자는 우리 문단사상 선례로 송몽규를 학술적으로 접근하고 연구하여 송몽규 연구의 토대로 마련하였는가 하면 우리 문단사상 처음으로 윤광주의 인생려정을 폭넓게 연구하면서 윤광주의 한생을 보는듯이 펼쳐보이고있다. 《광복전 겨레작가론》의 제5부를 이룬 송몽규 윤광주 론은 우리 문단에 좋은 본을 보여 보는이들의 관심을 한결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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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론에서는 강경애의 수필과 관련자료로 연변 룡정에서의 녀류작가의 발자취를 다각적으로 조명하면서 강경애의 첫 간도행은 1931년 봄이라고 지적하고있다. 이는 강경애가 김좌진장군을 암살한 공범이라는 설이 발붙일 곳이 없게 되는 유력한 근거이기도 하다. 이 근거를 안받침하는 자료연구는 항일로간부인 량환준의 《연변문사자료》에서 찾아내고 지희겸, 동북항일련군 리연록장군의 회억록에서도 밝혀냈다. 원래 리강훈의 증언에서 강경애는 김봉환과 같이 동거하면서 박상실을 사촉해 1930년 1월 24일에 김좌진장군을 암살한 공범자로 알려졌는데 사실 김좌진장군의 암살은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의 조직적 행동이며 구체적 집행자가 공도진, 최동범으로 불리운 리복림이였다는 사실적 근거를 찾아내여 확증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김봉환의 《동거녀》는 강경애가 아닌 김경애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광복전 겨레작가론》제6부는 극본론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의 극본론은 광복전 중국조선족문학사에서 획기적인 대표작으로 되는 두편의 장막극 《혈해지창》과 《싸우는 밀림》을 가리키는바 저자는 두 극본의 발굴과정으로부터 두 극본의 진실한 배경, 창작경위, 작가 등을 넓게 다루고있다. 저자는 우리 항일운동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따르면 두 극본의 《진실한 배경과 그 배경에 묻힌 허다한 사실》들을 알수 있는데 우리 문단은 《장장 40여년이 지나도록 밝히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광복전 문학사와 문학사 관련 겨레 작가들을 연구하자면 연박한 력사지식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혈해지창》의 극본을 보고 이는 지난시기 30년대 초반 그 시절 화룡현 삼도구와 평강구를 배경으로 어랑촌항일근거지를 가리키며 《싸우는 밀림》의 배경은 그 시절 장백현의 홍두산밀영을 가리킨다 함이 바로 그러하다.

이에 따라 저자는 연변대학 권철교수, 김운일교수, 박춘범교수들에 대한 전문취재와 관련자료 연구를 통해 두 극본의 발굴과 발표과정, 두 극본의 작자문제를 일목료연하게 밝혀내는가 하면 극에 나오는 인명, 지명들과 피바다 북간도 화룡현을 나타내는 인명, 지명을 상세히 대조연구하는 작업을 거쳐 삼화탄광, 새별, 학강대장, 류통사, 왕지평, 대소회싸움 등의 동일성추축으로 극본의 진실한 배경을 설복력 있게 밝혀내여 연변대학 김관웅교수를 감탄하게 하였다.

또 두 극본은 모두가 항일련군 제2군 제6사에 의해 창작되였음을 제시하면서 제6사 주요인원들에 대한 분석과정을 통하여 6사 사장 김일성과 6사 사령부 비서 리동백이 가장 유력한 적임자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1994년 출판으로 된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5)를 보면 김일성은 당년 무송현 만강에서 공연된 《혈해》 즉 《피바다》를 말하지만 《혈해지창》에 대해서는 모르는 실정이다. 하다면 리광인교수의 지적처럼 《두 극본의 작자 까마귀가 리동백》이 아닐가? 리광인교수는 《십상팔구는 그러한것 같다》고 하면서 《정확한 자료를 찾지 못하여 추측에 맡길수 밖에 없다》고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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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전 겨레작가론》을 이모저모 살펴보았다. 리광인교수는 겨레 력사연구와 더불어 우리 문학연구에서도 문제점을 찾아낸 다음 많은 문헌자료에 대한 검토와 여러가지 고증자료와 증빙자료로 자기의 견해를 펴내는 연구방식을 강구한다. 문헌자료가 부족한것들과 미비한 점이라고 생각되는 점, 재확인이 필요한 자료에 대해서는 두발로 뛰면서 현지답사를 통하여 나름대로 보충서술하고 자기의 견해를 천술한 부분이 많은것이 이 책의 무게라고 본다. 조사연구대상과 증언자료가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내가 아는 연변대학 김유훈, 정판룡, 현룡순, 허문섭, 리해산 교수 등도 저자는 생전에 거의 찾아 방문했고 조사대상과 관련된 인물- 친척, 친지, 친구, 아는 사람이라면 빠짐없이 찾아다녔고 관련된 곳, 사건의 발생지라면 저자의 눈을 피할수 없을 정도로 밟고 다녔다. 조사자료에 쓴 돈은 얼마이고 밟고 다닌 고장은 또 얼마랴만 저자는 이를 사명으로,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저자는 집필과 체계작성에도 많은 문제를 고려하고 신중히 처리하였다. 이 책의 제목을 《광복전겨레작가론》이라고 달았는데 저자는 고민이 많았다. 특히 조선족만이 아닌, 한때는 연변땅에서 활약하다가 조선으로 나간 최서해, 강경애 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 조선에서는 조선작가, 한국에서는 한국작가, 중국에서는 중국조선족작가라고들 하는데 이 문제에서 우리 민족 모두로 통칭하는 겨레작가로 이름을 정하고 그 사람들이 조선이나 한국이나 중국이나 구쏘련, 일본, 미국 등 세계 각국을 망라하여 한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 동포, 민족을 가리키는 겨레라는 말로 통일하였다는것이다.

이것이 리광인이며 이것이 리광인의 나름대로의 학술개성이기도 하다. 저자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펴낸 책이 지난 2005년부터 2015년 10년간 무려 20여부나 되니 겨레문학연구서만 하여도 《광복전 겨레작가론》, 《시인 윤동주 인생려정 연구》 등 여러부에 이른다. 여기에 드린 땀방울은 얼마나 되며 우리 겨레를 위해 쌓은 공력은 얼마이겠는가. 가도 되고 가지 않아도 되는 맛있는 술좌석에는 두문불출이고 친구의 부름에도 괴짜로 거절해야 하니 마음의 괴로움은 또 어떠했겠는가?!

그러나 리광인은 리광인대로 살아나갈것이다. 누가 뭐래도 제멋대로 학문에 대한 집착, 증진, 자기 하는 일에 대한 무한한 애착, 불붙는 열정, 끈질긴 노력으로 계속 우리 겨레의 발자취를 력사의 뒤안길에서 더듬으며 조용히 빛나게 살아갈것이다. 남은 여생의 행보에 우리 겨레의 발자국이 찬란한 력사로 찍혀갈것이며 걸음걸음마다에서 빛나는 열매로 주렁질것이다.

류은종

2015년 11월 27일 소흥에서

편집/기자: [ 최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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